장영실의 생각 실험실 해시계와 물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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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3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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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의 생각 실험실 해시계와 물시계
송은영 글, 오승만 그림, 해나무 출판사
임금인 나는 백성에게는 아버지와도 같다.
아버지는 가정을 잘 꾸려 나가야 할 책임이 있다.
그렇다. 임금은 모름지기 백성이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해 줘야 하는 책무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신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으로 노비 출신 장영실의 재주를
알아 보시고 해시계 물시계를 만들도록 지원 하셨기에
장영실 과학자 탄생으로 백성들의 삶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세종시대 시계는 평평한 돌 한 가운데에는
막대기가 곧게 꽂혀 있고, 그 둘레로 동서남북의
방향과 시각이 쓰여 있는 지평일구라는 것이
왕궁 뜰에 놓여서 시간을 예측했답니다.
지금처럼 스마트한 시계가 나오기 전에는 햇님이
시간을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지요.
장영실의 생각 실험실 해시계와 물시계
장영실 과학자는 세종대왕의 뜻을 받들어 가마솥모양의
반구형 해시계 발명했지요. 해시게는 밤이나 흐린 날,
눈 비가 오는 날에는 시간을 측정하기 힘들었지요.
해가 보이지 않을 때에도 시간을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낀
세종과 장영실의 간절함으로 물시계가 발명된 것입니다.
'시간은 늘 일정해야 시간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그 옛날 시간을 일정하게 마추기 위해 고심하신
장영실 과학자와 세종대왕께 감사의 묵념을 해 봅니다.
장영실이 발명한 물시계는 큰파수호 2개 작은 파수호 2개
수수호 2개로 세종실록에 세종16년 음력 7월 1일로
기록되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답니다.
항아리에 12개의 눈금을 균등하게 나누고,
눈금 하나하나에 십이지를 표시하고
맨 아래 눈금은 자시이고, 맨 위의 눈금은 축시로 표시했답니다.
물이 차오르는 높이로 시간을 측정하는 누각과 경루로
시간을 재는 것은 물시계의 기본원리합니다.
물시계 발명으로 성문 여는 시각 성문 닫는 시각,
수문장의 교대시간, 순라군의 순찰시각을 알리는
서운관의 역할이 중요했으며, 매서운 한겨울 밤에
부들부들 떨면서 물시게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일해야 했던 서운관들이 고생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찡~ 합니다.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서운관의 노고를 생각하며
더욱 깊은 연구로 사람이 아닌 나무 인형이 대신하게 하고,
구슬이 떨어지고 구르는 힘을 동력으로 이용하며
나무 인형 팔이 종을 울리게 만들었답니다.
애민을 생각하는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마음으로
발명된 해시게(앙부일구)와 물시계(자격루)를
생각하니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1만원권 앞면에 오른쪽에는 세종대왕이 왼쪽에는
물시계가 인쇄돼 있었는데, 장영실이 발명한 물시계가
아니라 덕수궁의 물시계가 그려 있어서 새로이 찍은
만 원권에는 물시계가 없답니다.
덕수궁에 물시계는 조선 제 11대 왕인 중종 임금91536년)에
제작된물시계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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